사무엘상 21장은 사울에게서 도망치다가 간 곳에서 다윗의 행동이 어떠했는지 소개한다. 

거기는 가드 왕 아기스가 있는 곳이다. 다윗은 이 장면에서 무척이나 두려운 나머지 결국엔 미친 척까지 한다.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세인들은 '다윗'하면 '골리앗'을 떠올린다. 그리고 자신의 형편과 모습을 비추어 보면서 비겁하고 타협하는 상반된 자신의 모습을 비교하기도 한다. 거구의 골리앗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물리친 용기있는 다윗을 보면서 때론 나는 왜 이렇게 형편없는가 자책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더 분명히 기억해야 할 모습은 골리앗을 물리친 다윗이 아니라 가드 왕 아기스 앞에서 미친 척까지 했던 다윗이다. 우리의 삶에 승리와 행복의 짧은 순간이며 힘겹고 치열한 삶이 더 오래 지속되는 탓이다. 그래서 성경에도 '인내', '오래참음', '두려워 말라'는 말씀이 그토록 자주 반복되어 강조된 까닭 아니겠는가?

우리의 삶을 돌아보자. 아무리 힘겹던 때였더라도 다윗처럼 '미친 척'까지 한 적이 있는가? 그래도 잘 버텨 내고 있지 않은가? 다윗 뿐인가? 자신에게 피해가 올까봐 아내를 두고 자신의 아내라고 떳떳이 얘기하지 못했던 아브라함도 있다. 동족에게서 배척을 받고 멀리 떨어져 40년간이나 살아간 모세도 있다. 이들 모두 우리가 믿음의 조상이요 표본이라 일컫는 이들이다. 그러나 이들에게서 그 사건과 시간들이 결코 그들의 인생의 끝이 아니었다는 점 또한 분명하지 않은가?

감사로 오늘을 살자. 골리앗을 물리치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을 탓하는 날이기보다, 다윗만큼 미친 척하도록 망가지지 않을 수 있는 나날이어서 감사한 하루로 기억되었으면 한다.


- 2014년 3월 21일, Facebook에 올린 묵상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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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일부로 블로그 카테고리에 <성경과 신앙>을 추가했다. 이 글은 그 사연을 설명하는 글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두 번 연속해서 쓰여지고 있다(고린도후서 2:17, 4:2). 다른 한글 번역본인 새번역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는 (사람)'을 '하나님의 말씀을 팔아서 먹고 살아가는 장사꾼'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영어성경을 보면 '혼잡하게 하다'를 NIV에서는 Peddle, KJV에서는 Corrupt로 사용하고 있다.


이 시대는 무수히 많은 정보와 사상들이 흘러 넘친다. 기독교와 성경에 관한 것도 예외가 아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잘못 이해되거나 의도적으로 곡해된 스토리도 함께 유포된다. 사도들이 활동하던 당시에도 그러했으니 지금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기독교는 성경에 기초하여 세워지며 그 무엇보다 성경 말씀이 우선시된다. 성경 말씀을 혼잡하게 하는 것은 기독 신앙에 치명적인 해를 미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개인 블로그에 성경과 신앙에 관해 쓴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그래서 블로그 개설을 하면서도 성경에 관해서는 직접적인 언급을 가급적 피하려 했다. 성경에 관해 꾸물꾸물 이런저런 언급을 하려는 마음이 일어나도 꾹 눌러왔다. 그러나 고린도후서를 묵상하면서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블로그 운영 두 달 만에 결국 <성경과 신앙> 카테고리를 만들고 이 아침에 글을 쓰고 있다. 


목회자도 아니고 전문 사역자도 아니며 신학교를 다니지도 않았지만, 신앙인으로서 당연히 성경 말씀을 읽는다. 교회에서 설교를 듣고 존경하는 목사님들과 훌륭한 신앙인들의 이야기와 생각들을 듣는다. 성경 말씀을 읽고 그 말씀에 주목한다 것은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관심을 둔다는 것이고 잠깐의 삶(이생)보다 영원한 삶(영생)에 초점을 둔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고린도후서 4:18)


<성경과 신앙>란에서는 평범한 사람의 성경 말씀 묵상과 신앙 생활을 '쉽게' 이야기하고 싶다. 누군가 기독교인이 아닌 분들이 읽을 때 기독교, 성경, 신앙, 영생이란 것에 대해 좀 더 친숙하게끔 느껴지도록 하고자 한다. 얼마나 자주 포스팅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기회가 닿는 대로 이 카테고리에 글이 차곡차곡 쌓여질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고린도후서 4:5)


결정적으로 이 말씀이 <성경과 신앙>란을 만들게끔 이끌었다. 블로그에서 '나를 홍보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된다는 것. '내가 아는 것과 경험한 것'을 전달하려는 블로그 운영 목적에서 '그리스도 예수'를 의도적으로 제외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일침이었다. 


그래서 일단 시작한다. Just Do It. 이곳의 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면 오래 지속될 수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금새 중단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9월은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이란 기대가 솟아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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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놓음



너희는 그저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만 하라. 그 이상의 말은 악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 마태복음 5장 37절(우리말성경)




코치는 코칭할 때 ego-less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고객은 옳다>는 전제 하에 고객의 말과 생각에 공감해 주어야 한다.

고객의 말을 공감적 경청할 뿐 코치가 그 이상의 말을 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생각을 투영하는 것이요 이는 곧 "악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대화하면서 내 생각, 의견, 가치관, 선호도를 내려놓고 듣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르겠다. 잘 되지 않는다. 그만큼 내 자아(ego)가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님은 끊임없이 "나 자신을 내려놓음"에 대해 말씀하신다. 
어쩌면 코치가 된다는 것은 이러한 내려놓음의 훈련 과정일 것이다.



코칭의 정의

국제코칭연맹(ICF)
코칭은 고객의 개인적, 전문적 기능성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영감을 불어넣고 사고를 자극하는 창의적인 프로세스 안에서 고객과 파트너 관계를 맺는 것이다.
(Coaching is partnering with clients in a thought-provoking and creative process that inspires them to maximize their personal and professional potential)

한국코치협회(KCA)

코칭은 개인과 조직의 잠재력을 극대화하여 최상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 수평적 파트너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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